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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칼럼_170411] 그냥 쉴래요
관리자 | 2017-04-11 10:00:24 | 1026

[경제와 미래] "그냥 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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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뜸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그냥 쉬어요’라고 말한다. 뭔가 준비하고 있다고 짐작은 하지만 쉰다는 어감이 그냥 쉬고 있다기 보다는 하고 싶은데 마땅히 일이 없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쉬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쉬다 : [동사] 1.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2. 잠을 자다. 3. 잠시 머무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쉬는 건 그저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고 누워있는 게 다는 아니다. 법정스님은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이 곧 수행(修行)이요. 대장부다운 살림살이다고 했다. 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다. 먼 길을 가기도 어렵고 홀가분하게 나아가기도 어렵다. 쉼은 곧 삶의 활력소이다. 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다만, 그저 일만 생각하며 사는 것도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일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일 없어 쉬는 것 또한 슬픈 일이다. 더군다나 한창 일을 해야 할 나이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일할 능력은 있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인구가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해 지난달 15~29세 ‘쉬었음’ 인구는 1년 전보다 1만1600명 늘어난 36만2000명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2013년 2월(38만6000명)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늘어난 것은 2015년 11월(6900명) 이후 15개월 만이다.

‘쉬었음’은 큰 병을 앓는 것도 아니고 일할 능력이 있지만, 그냥 쉬고 싶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최근 청년층 ‘쉬었음’ 인구의 증가는 2년여간 계속된 높은 청년실업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다양한 원인이 있어 그 이유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흔히 `니트족(NIEET족·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급증하고 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도 사상 처음으로 월 30만 명을 넘어섰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한 것은 노동시장의 사유가 아니라 자발적인 사유 때문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유 없이 쉬는 니트족이 증가하면 장기적인 경제효율성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너 요즘 어떻게 지내니?” “취업 준비는 잘 하고 있지..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오고……,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면 이 말이 기쁘면서도 또 제일 부담스럽단다.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불안하고 마음고생이 심할 지 짐작이 간다.

어디 청년들뿐인가 마음고생이 심하기는 중소기업도 매한가지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약 87%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전체 기업수로 따지면 100개중 99개가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매번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한탄한다. 이처럼 높은 청년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청년들은 스펙 쌓기나 다양한 경험 등 취업준비 기간이 늘어날수록 고용불안을 느끼는 한편, 중소기업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이 부족해 기술경쟁에서 뒤쳐지고 자금난과 인력난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그런데 최근 한 조사에서 청년들이 가장 필요한 고용위기 해결방법으로 ‘괜찮은 중소기업 일자리 확대’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이는 공시(공무원 시험) 및 대기업 선호 일변도에서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왜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어떤 구직자는 매출액이 수백억이 넘는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러갔다 낡은 건물과 냄새나는 화장실,알바생 대하듯 하는 회사 태도에 면접에 합격했지만 그들의 표현으로 되레 회사를 ‘깠’다(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일부이겠지만 구직자들이 느끼기에 중소기업은 여전히 매력 없고, 비전이 없는 일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청년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이 대기업만큼 임금을 줄 수 없다는 건 각오하고 있다. 중요한건 내가 어떻게 취급받고 함께 공유할 미래 비전이 있느냐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는 자산이다’라는 생각으로 기업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서 서로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에 맞는 특화된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데도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정부, 지자체의 역할도 절실히 필요하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열악한 환경에 처 해 있다. 가뜩이나 벌이도 시원찮은데 복지시설 확충이나 임금 인상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없어 한숨 쉬는 청년과 경기불황으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내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조금만 더 디테일에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일자리 확대를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내심 기대를 하고 있지만 솔로몬의 비책이 나올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한 대선 후보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울린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국민이 없도록, 교육의 기회가 없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일자리가 없어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없도록,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간절히 기대하고 또 희망한다. 그냥 쉬는 이들이 없도록……,

하얀 벚꽃이 흩날린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냥 쉬고자 하는 이들이 희망을 갖고 봄바람 휘날리는 이 거리를 함께 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