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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꽃들에게 희망을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닌 나에게 얼마 전까지‘터널’이라는 드라마는 중요한 저녁 일과 중의 하나였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터널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치는 형사 수사물이다. 주인공 박광호라는 형사가 1986년과 2017년, 30년을 뛰어넘어 터널을 통해 오가며 과거에서 무언가를 바꾸면 미래에서도 바뀌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상상을 하곤 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뭘 바꿔 놓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꼭 되돌려 놓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억울한 죽음’이라고 할 것이다. 꼭 억울하지 않더라도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기에 누구나 되돌려 놓고 싶은 것이다. 하물며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간 젊은 청춘들의 죽음은 오죽하겠는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숨진 청년 정비사와 열악한 제작 환경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입 PD, 이동통신사 현장 실습 중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고생….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턱에서 지친 나머지, 어머니의 승용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휴게소 화장실에서, 자주 가던 공원에서, 고시원에서……. 이젠 지치고 더 이상이 희망이 없다고, 그리고 한결같이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가버렸다. 행복한 삶을 위한 치열한 노동과 청춘의 몸부림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한 순간에 꺼트려 버린 것이다.
구직자는 넘쳐나는데 취업의 문은 좁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때 직장을 구하는 것은 특별한 소수만의 이야기다. 이젠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 역시 이미 놀랄 일도 아니다. 어려운 취업난에 대한민국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그렇다 보니 출신 학교도, 스펙도 따지지 않고 공정하게 선발되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생들이 몰리는 것도 당연하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에 17만2000여명이 응시했다. 이는 역대 최고의 경쟁률이다. 35대 1의 높은 경쟁률 속에 치러진 올해 시험에서 공무원이 되는 응시자는 4910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응시생의 2.8%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고 어렵지 않은 때는 결코 없었다. 모든 이가 누리는 풍요는 늘 그래왔듯이 억척같이 살아 온 부모들의 덕이다. '캥거루족', '엄친아', '헬리콥터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현재의 청년 세대는 부모의 높은 관심과 애정 속에서 자라왔다.
그만큼 자아 정체성과 자존감이 강한 세대다. 특히 그들의 직업 선택의 기준도 복합적이다. 과거에는 고용 안정성과 급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풍조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층은 직장이 제공하는 물질의 안락함만을 좇지는 않는다. 안정성과 급여 못지않게 성취감도 직업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직장에 들어가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과 좌절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좀 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세계 최대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 49일간 3500㎞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한 고(故) 이윤혁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체육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은 2006년 23살 때 전 세계적으로 200여명에게만 나타난다는 희귀암‘결체조직 작은원형 세포암’에 걸려 3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랜스 암스트롱의 저서‘1%의 희망’을 읽고 2009년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해 49일간 3500㎞를 완주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윤혁씨는 그 다음해인 2010년 7월 15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젊다는 말조차 아까운 그의 나이 27세였다.
무엇이 그의 삶을 이토록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우리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의지와 도전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만을 고집하고 말고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겠지만, 시련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좌절을 이겨내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청춘’의 특권이다.
예전의 나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요즘 내 생각들. 진짜 철이 없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조금 더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넓혀나가고 바다 속 깊은 심연의 성찰도 가져보아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자꾸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 같다. 터널에서처럼 30년을 거슬러 20대 청춘으로 되돌아간다면 빛나는 청춘을 꼭 다시 맞고 싶다.
삶에서 진정 중요한 일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현하는 일일 것이다. 경쟁에 지친 호랑애벌레는 결국 고치를 지어,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다.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의 잠재력에 충실한 쪽을 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좁은 정상이 아니라, 이제 하늘이 호랑애벌레의 것이 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야 꽃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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