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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Ⅱ
주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동네 어귀에 집집마다 감이 풍년이다. 안쓰러운 가지가 감의 무게를 이겨낼까 걱정이 든다. 올 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깊어간다. 계절의 흐름은 세월의 흐름과 벗하며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정겹게 때로는 서글프게 우리네 삶에 자리하며 마음과 생각을 키워간다
태산 같은 자부심으로 누운 풀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던 5년 전 가을의 단상을 다시 회상한다.
유별났던 여름이지만 여름을 열심히 산 이들은 다시 가을을 가을답게 살기 위해 꿈을 꾸고 분주하다. 옛말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고 했던가. 수확을 앞 둔 들녘은 말할 것도 없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이 가을은 어쩌면 가장 짧은 계절이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고 보면 이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잘하게 피어있는 들꽃들은 갸날픈 몸으로 여름 한 낮의 뙤약볕도, 심술궂은 비바람도 의연하게 버티어내고 좋은 자리 진 자리 가리지도 않고 또 기웃거리지 않고 오로지 제 몸에서 우러나는 형형색색의 모양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맑고 푸른 가을날엔 ‘가만있어도 내 안에서 살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밖에 무엇을 더 받아들인단 말인가’라고 했던가.
이 가을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넘치고 풍요로운데 왠지 우리 마음은 텅 빈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올해도 다 가는구나. 이 가을 지나면 금방 12월인데 아무것도 해놓은 것은 없고..그래서 더 우울해진다.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내 인생 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열심히 살았느냐고,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오랜만에 가을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아니 지금 이 가을에 나는 내 자신에게 뭐라 말할 것인가? 마음은 천리를 달려도 머릿속만 복잡할 뿐 그저 그 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내세울 만큼 아름다운 삶도 아니었고 또 미래지향적인 거창한 꿈도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게을리 살아온 것도 아닌데 그저 후회스러운 일들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가 곧 일 년이고 우리네 인생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른다. 이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 시간이 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비 맞지 않고 사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은 이 가을만은 가만히 있어도 넘치고 살이 올라 주위를 둘러볼 줄 알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넉넉한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
올 가을엔....
내 삶도 그렇게 멋스럽게 나이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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